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셜록의 기세에 밀려 내방에 서있었다.
무심코 옷장 문으로 향하던 손을 멈춰세웠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줏대없이 끌려다니는 남자가 되었는지. 오늘 화분을 깨뜨려서 일까, 셜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서 일까, 내 안의 죄의식이 나도 모르게 셜록을 따르게 하나. 갖가지 자기 혐오로 내가 나를 괴롭히며 옷장을 열었더니 어제 내가 다려놓은 갈색 양복이 보였다.
셜록이 망쳐버렸던 첫번째 데이트를 재연할 생각은 내겐 추호도 없기에 나는 황급히 내 방문을 열었다. 계단 난간위로 얼굴을 내밀어 셜록을 찾아보니 그의 코트자락이 막 코너를 돌고 있었다.
"셜록!"
철커덩하고 경쾌한 문소리가 내귀에 들렸다. 내 말이 그의 귀에 닿기도 전에 현관문이 닫혀버렸기에.
멍하니 혼자남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와 셜록이 다투고 있었다. 별 수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갈색양복을 떠올리면 셜록의 말을 온전히 따를 수 없었다. 레이디 퍼스트. 많이 급하면 행동이 굼뜬 플랫메이트 정도야 두고가지 않을까. 나는 내 방에서 사라와의 데이트 시간이 올 때까지 굼뜬 플랫메이트를 연기하며 농성하기로 결심했다.
내 기지에서 나는 내 선약을 떠오르게 해준 갈색양복을 꺼내 의자에 걸어놓았다. 사라와의 첫데이트때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끔찍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리. 데이트 TPO에 맞는 옷이 내겐 이것 뿐인 걸. 그녀를 생각하니 내 농성의 당위성이 점점 확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갈색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며 내 맘을 단단히 다지고 있을 때, 밖에서 클랙션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다. 불행히도 주거지역에서 사람들 눈치도 안보고 저리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중에 있는지라 급히 내 방 창문을 열었다. 블랙캡 옆에서 그 아는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흔들기에 나도 같이 내 손을 흔들어주었다. 난 못가. 그러자 나를 향해 빵-하고 또 한번 클랙션이 울렸다. 동네 시끄럽게 왜저러는 지 모르겠다고, 내가 팔짱을 껴보이자 빵- 또 울려왔다. 셜록은 아무래도 나를 데리고 갈 생각인가 보다.
빵- 우리집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셜록을 노려보며 지나갔다. 꼴을 보아하니 야드사람들이 신나게 달려오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 했다. 빵- 저놈의 소시오패스는 날이 갈수록 패악질이 심해진다. 플랫메이트를 잘못 둔 죄로 나는 이게 뭔 고생인가. 허드슨 부인을 볼 낯이 없다고 어느새 농성도 포기하고 급하게 파자마를 갈아입는 내가 있었다.
221B현관문을 열기 전에 나는 내가 할 잔소리들과 대로변에서 꾸중을 들을 셜록을 상상했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내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다. 내 상상 속 주연배우가 이미 블랙캡안에 타고선 손짓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일의 앙심이 남았는지 셜록이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잔뜩 찌뿌린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타지 않았다. 원래 계획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나는 오늘 무례한 플랫메이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생각이었다. 대로변에 서서 침묵시위를 시작한 나를 가만히 보다가 셜록이 손을 내밀어 택시등을 가리켰다. 불이 꺼져 있었다. 젠장, 욕이 나왔다. 나를 기다리느라 서 있는 동안에도 미터기가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어디 가는데?"
"타요, 타면 말해줄게요."
"나 오늘 바빠."
셜록이 목을 큼큼 하면서 또다시 택시등을 가리켰다. 젠장, 결국 내안의 스쿠루지영감이 셜록편을 들어주었다. 서둘러 블랙캡안으로 내 몸을 밀어넣었더니 셜록이 택시기사를 향해 곧장 행선지를 말했다.
"알드게이트역이요."
멀다, 화이트 채플지역이군. 오늘 데이트에 늦지 않으려면 적어도 한시간은 일찍 나와야 할듯 싶다. 택시가 출발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피카델리를 나는 침울하게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날씨도 좋건만 아침부터 험악한 범죄현장을 보러 가는 처량한 내 신세라니. 차가 피카델리와는 정반대 방향의 지하로로 들어서자 내 기분처럼 주위도 어두워졌다. 임시거울이 된 창문으로 우울한 내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내 그림자 뒤로 나를 보고 있는 셜록이 비쳤다. 평소라면 신나서 떠들어댔을 사건 경위도 영 말을 않는 게 지루해 보여서 내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시체가 발견됐어요. 34살, 여자, 큐레이터."
큐레이터란 말에 나는 화이트채플갤러리가 떠올랐다. 데이트 장소를 물색하느라 들어가본 웹사이트에서 알드게이트역 옆에 있다는 그 갤러리를 본 기억이 있기에. 그곳이 현장인걸까? 내 그림자 뒤에서 셜록이 여전히 나를 보고 있기에 아까 잊어먹은 예의범절이 떠올라 내가 고개를 돌렸다. 대화할땐 사람 얼굴을 보면서 하라고 배웠으니.
"그럼 미술품 관람이라도 하게 되는 건가?"
"아뇨, 우리가 볼껀 퀘퀘한 지하다락방에서 발견된 싱싱한 시체에요."
마치 막 잡은 싱싱한 생선이요, 라고 말하는 듯한 말투에 잠시 내 눈살이 찌뿌려졌다. 사건을 대할 때 희생자들을 향한 셜록의 뾰족한 말들은 해부학수업을 들을 때 기증자들에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고 배워온 내 삶과 거리가 있었다. 하긴 살아있는 사람들도 갈궈대는데 죽은 사람들이라고 없던 경건심이 생길리가 있겠는가 싶지만서도. 이미 모리어티가 주도했던 테러 사건에서 셜록과 나의 이견을 확인한 바 있어서 나는 굳이 지적은 않기로 했다. 다만 싱싱하다는 표현을 내 식으로 바꿔서 말할 뿐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됐나보네."
"아마 두시간쯤 지났을 거에요."
"발견 시간이?"
셜록이 고개를 저었다.
"사망 추정시간이요. 발견한 건 한시간 전이에요. 아무리 앤더슨이라도 그렇게 빨리 발견한거면 사망시간을 정확히 추정할 순 있겠죠."
불쌍한 앤더슨. 도대체 셜록한테 뭘 밉보인 걸까. 이게 동업자 정신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학문을 전공한 입장으로서 셜록이 갈궈대는 살아있는 사람 중 가장 최악의 케이스를 나는 가슴깊이 동정했다.
"도착했을 땐 좀 굳어있겠는 걸."
"현장만 잘 보존해뒀으면 시체는 상관 없어요."
내 머릿속에 셜록이 완벽히 읽어냈던 코니 프린스의 시체가 떠올랐다. 이틀을 바츠에서 썩혔지만 보톡스 자국을 관찰하는 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요, 보톡스 자국같은 다잉메세지도 늦게가야 볼 수 있다고요."
갑자기 들려온 셜록의 말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내 생각을 읽은건가. 직업을 맞추는 거나 내가 전날밤에 어딜 갔다왔는 지 맞추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처음 마술이라도 본 방청객마냥 떡 벌어진 내입을 보고 셜록이 다시 말했다.
"독심술 같은 게 아니에요."
"어떻게 알았어?"
"관찰한거죠." 내가 또다시 어떻게? 라고 물으려하니 셜록은 되려 숫자를 셀 줄 모른다는 얘기라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체에 상관없다는 소릴 듣고 눈을 왼쪽으로 올리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손을 쓰다듬더군요. 마침 창밖에 성형외과 간판이 스쳐지나가고 있었고요. 내 얘기에 뭔가를 연상했는 데 무의식중에 그때 본 가장 인상깊었던 흔적을 손으로 건든거죠. 그 여자 오른손에 가짜 파상풍 상처가 있었잖아요."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그의 독심술의 정체를 듣고 있자니 늘상 그래오던 것처럼 내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대단해!"
셜록이 나를 동물원에 있는 기린보듯 쳐다봤다.
"존은 생각도 관찰할 수 있다는 걸 가끔 까먹는 거 같아요."
셜록은 내가 보통 사람이라는 걸 가끔 까먹는 거 같다.
일생 지루한 작은머리들을 봐온 그가 이제는 제발 그가 해온 것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 바랄뿐이다. 셜록이 이제는 내 지루한 머리를 보고있었다. 나는 그가 또다시 내 생각을 관찰하고 있는 건가 싶어 좋은 말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셜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뒷자석에 머리를 붙이고 운전기사 뒷통수를 보기 시작했다.
셜록은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은 셜록에 대한 찬사로 가득찼다. 이런 플랫메이트를 가진 덕분에 내 손의 상자가 늘어나던 게 아니던가. 셜록의 독심술같은 추리를 듣고 나니 나는 현장에 빨리 가보고 싶어져서 택시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몸은 도로위에 있는데 내 마음은 이미 현장에서 사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발견된 게 이른 걸 보면 현장엔 용의자가 미처 치우지 못한 증거들이 널려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셜록이 날카롭게 읽어낼 흔적들을 상상해보며 내가 말했다.
"이번 사건은 빨리 해결 되겠어."
뒷자석에 머리를 붙이고 있던 셜록이 미간으로 눈썹을 모았다. 응? 셜록의 얼굴이 불쾌해 보였다. 나는 혹여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 모리어티가 낸 문제들도 시간내에 풀어낸 셜록이 아니던가. 아, 혹시 금방 풀리는 지루한 사건이라는 소리로 들렸나? 나를 슬쩍 보곤 셜록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썹을 폈다. 의아한 내 머릿속이라도 읽었던지.
"가서 보기 전까진 몰라요."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반대쪽 창으로 셜록이 얼굴을 돌렸다. 창문에 빠르게 스치는 런던의 풍경 위로 셜록의 얼굴이 덧그려졌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음에도 내눈엔 보이지 않는 입이 댓발은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알드게이트 역에 도착해서 셜록이 잔금을 치르는 동안 나는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역 바로 옆에 상아색으로 꼿꼿이 서있는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폴리스 라인도 보이지 않고 한산한 것이 확실히 사건현장은 아닌 듯 했다. 낮인데도 거리는 어쩐지 사람도 없고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와서 런던 최빈민가의 악명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루에 2,3명 쯤 죽어나간다고 해도 전혀 의심되지 않겠는 걸. 사건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분위기에 막 택시에서 내리는 셜록에게 내가 말했다.
"잭더리퍼가 아직 살아있는 거 아냐?"
"죽은 사람은 큐레이터지, 매춘부가 아니거든요."
"나도 알아. 거리 분위기를 그냥 은유적으로 말해본 거야."
"오래 살고 싶으면 그 사람 얘기는 여기선 안하는 게 좋겠어요. 존."
셜록이 나를 꼬라보며 지나가는 히잡 여인을 보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사는 모양이지. 잭더리퍼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화이트 채플거리에선 공포의 대상인가보다. 셜록이 긴다리로 휘적휘적 걷기 시작해서 히잡 여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나도 그의 뒤를 냉큼 뒤따랐다.
셜록이 런던지도를 꿰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만난 날 택시를 추격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외우기도 힘든 복잡한 골목을 몇번이고 돌고 도는 지금도 내게 인상깊게 와닿았다. 일전에 와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도 처음 와보노라고 대답했다. 처음 가본 곳은 언제나 낯을 가리는 나이기에 그랑 여행을 다니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내 귀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니 익숙한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거무티티하게 때 낀 건물앞에서 도노반과 레스트라드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셜록!"
레스트라드가 나와 셜록을 발견하고 곧장 다가왔다. 나는 이렇게 화창한 날 아침부터 시체를 보면 기분이 안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레스트라드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성큼성큼 땅바닥을 눌러대던 경위는 인사도 없이 대뜸 말했다.
"제발 부탁인데 변덕 좀 부리지마."
응? 영문 모를 소리에 나는 멱살잡을 기세로 셜록을 노려보는 레스트라드를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셜록과 레스트라드의 사이로 자리를 옮겼다. 혹여나 레스트라드의 불끈 쥔 주먹이 인내심을 잃으면 나는 둘 사이를 막을 작정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태연한 얼굴로 베테랑 경찰의 표정을 감상하고 있었지만. 셜록이 내속도 몰라주고 레스트라드의 속을 긁었다.
"무슨 소리신지?"
레스트라드가 두눈을 꾹 감으며 숨을 골랐다. 이제 보니 확연해졌다. 레스트라드의 짜증의 원인은 시체가 아니라 셜록때문인가보다. 셜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레스트라드를 내려보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거짓말 같았다. 레스트라드의 인내심을 보면 존경스러운데가 있다. 나보다 오래 셜록과 지내온 사람이니 화를 참는 노하우라도 생겼나. 레스트라드가 주먹을 꾹 쥐고 힘겹게 한마디한마디 내뱉었다.
"아침부터 얼마나 연락했는지 알잖아? 전화는 또 왜 안받아!"
"핸드폰을 두고 왔어요."
셜록의 말에 기가차서 레스트라드는 할말을 못찾고 있는 듯 했다. 아침에 나도 겪었던 셜록의 그 뻔뻔한 표정을 보며 나는 오늘 아침 셜록의 발자국 소리를 감췄던 알림음들을 떠올렸다. 셜록이 검지손톱을 튕기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쨌든 왔잖아요. 시체는?"
"내말 안끝났어. 앞으로 이런 식으로 사건 가릴 거면 너한텐 아무 것도 안맡길거야!"
레스트라드가 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셜록을 위협했다. 셜록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은 내가 듣기엔 제대로 먹혀들 것처럼 보였지만, 셜록은 레스트라드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쪽을 노려보는 도노반을 보고 있었다. 목의 각도와 안구 방향을 보아하건데 무릎쪽을 보는 듯 했다. 레스트라드도 내가 보던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내말 듣고 있어? 너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여기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어야 했는 지 알아!"
"다 들었어요. 그 인원으로도 해결안되는 사건이라 절 부른 거 아닌가요?"
나는 경찰이란 직업도 할만한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의 말에 레스트라드가 금세 침울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레스트라드가 말한 협박이 앞으로 실행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불쌍한 경찰의 기운 빠진 목소리를 들었다.
"데드라인이 있어. 네 도움이 필요해."
"연쇄살인 예고라도 하던가요?"
"여기선 말하기 곤란해."
셜록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전혀 기뻐보이지 않던 모습에 의아했던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셜록의 모습이었다. 셜록이 레스트라드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다시 변덕 부리기 전에 현장으로 안내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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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주간연재..(장편될 기세...)
왜 내가 쓰는 셜록은 멋있지 않고, 몽가 징징대는 애 같을까요ㅠㅠㅠ
소설원작에서 왓슨의 생각을 읽는 홈즈는 좀 무리수 같았는데 직접 써봐도 무리수 같으요..
아, 내눈엔 왜이리 전개가 빨라보이는 것인지...
+) 1. 6/20 포풍퇴고
2. 6.23 포풍퇴고
3. 나중에 퇴고하겠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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